法華經(법화경)

◑ 제25 관세음보살보문품 ◑

무루2 2017. 4. 4. 08:08


妙 法 蓮 華 經 ~ 71




◑  묘 법 연 화 경

제25 관세음보살보문품 ◑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 법화행자의 본보기2


강의: 이 품에서는 앞서의 묘음보살에 이어 관세음보살도 법화행자가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지혜와 자비와 원력과 교화와 구원의 능력이잘 표현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자신의 지혜와 자비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공덕의 힘으로 중생들의 온갖 고난과 재앙들을 물리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품을 위시하여 지장경 등 불교에서는 불보살의 명호를 소리내어 부름으로써 일체의 고난으로부터 구제를 얻고 바라는 바를 모두 이룬다는 믿음이 지극히 팽배하여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이치를 바르게 이해해야 다른종교의 맹신과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른 점의 가장 중요한 것은 부르는 대상이 자신의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자신 밖에 있는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과 같이 그 내용은 부르는 사람들의 자신의 내면에 감춰져 있는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일깨워 자신의 것으로 활용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일깨워내는 일은 곧 자신이 부처님이라는 확신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관음경, 즉 관음신앙이 이 법화경의 근본취지인 '사람이 부처님이다' 라는 데서부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불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이것입니다.

 

임제스님은 일찍이 오대산으로 일보 일배를 하면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대산에는 문수보살이 없다. 오대산의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일보 일배 하면서 올라가는 당신이야말로 살아 있는 참 문수보살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청천의 벽력과도 같은 사자후입니다. 임제 스님만이 할 수 있는 큰 법문입니다.

 

독자는 여기에서 눈을뜨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에 눈을 뜨겠습니까. 그런데도 오해의 소지가 많은 것은 근기가 하열(下劣)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방편으로 사용하고 있는 불상이나 보살상 앞에서 부르도록 한 데서 기인합니다. 상견중생(相見衆生)이라 하여 근기가 하열한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이 오해를 낳게 된 것입니다.

 

모양다리를 봄으로써 비로소 자신안에 있는 무한한 능력을 일깨워 낼 수 있는 근기들에게는 오해의 소지는 있으나 지극히 타당한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불러 일념이 되면 화두참선(話頭參禪)보다도 훨씬 우수한 공부방편입니다.

 

경문: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은 크고 큰 서원 깊기가 바다와 같아, 헤알릴 수 없는 겁을 지나오면서, 무수한 천억 부처님을 발들어 섬기고, 청정한 큰원을 세웠느니라. 깨끗하여 때가 없는 청정한 광명, 지혜의 태양이라 모든 어둠 깨뜨렸느니라. 그러므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거나 그 모습을 친견하여 마음에 늘 생각하여 헛되이 지내지 아니하면 능히 모든 고뇌가 소멸하리라.

 

가령 해치려는 자가 있어 큰 불구덩이에 밀어 뜨렸을 때에 저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는 그 힘으로 불구덩이가 변하여 못이 되리라. 혹 큰 바다에 표류하여 용이나 온갖 귀신의 환난을 당했을 때에 저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는 그 힘으로 파도에 빠지지 않으리라." 




나무 석가모니불!

성불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