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제자가 혜가를 찾아 무릎을 꿇었다 .
"스님 저의 머릿속에 번뇌가 가득합니다.
그 때문에 매일같이 밤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번뇌를 끊는 법을 설 해주십시요."
"번뇌가 있는곳을 내게 가르쳐주면 끊어주지."
혜가는 빙그레 웃으며 제자를 쳐다보았다,
제자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네도 모르는걸 내가 어떻게 끊을수 있겠는가?"(무지요 무기다)
혜가의 얼굴에 미묘한 웃음이 흘렀다.
이쯤 되면 알아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제자는 전혀 알아듣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는 그저 머리를 갸웃거리며 더욱 혼란스러운
표정을 짖고 있었다
"그렇다면 번뇌란 원래 없는 것입니까?"
그래도 경전에 이르기를 모든 번뇌를 끊고
선을 행해야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번뇌는 어디에 있고, 선은 어디에 있느냐?"
혜가가 되물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모른다고 해서
그것이 없다고 단정할 순 없지 않습니까?"
그의 물음이 여기에 이르자 혜가는 한 가지 비유를 들었다.
"법당 뒤에 큰 너럭바위가 하나 있는데,
자네는 그 위에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겠지?"
"예"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 바위 위에 불상을
새겨놓으면 자네는 그것이 부처님인줄 알고
감히 그 위에 눕거나 앉지 못하겠지?"
"예"
"그렇다면 그 바위가 부처가 된 거냐?"
"아닙니다."
"그런데 자네는 왜 이전처럼 그 위에 편히 눕지 못하느냐?"
제자는 혜가의 이말에 비로소 깨우쳤다.
제자는 무엇을 깨우쳤는가?
제자의 고통은 어디서 왔는가?
문자에 집착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에
집착했기 때문일까.
문제는 언제나 내부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푸는 열쇠 역시 내부에 있다 다만
자신속에 열쇠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데에서 고통이 생겨난다.
번뇌는 마음속에 있는 무거운 바위이다.
이 바위를 꺼내는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바위를 깨뜨리면 되겠는가?
그렇다면 깨어진 바위는 바위가 아닌가?
바위를 깨뜨린다고 바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바위를 당신의 마음 속에서 꺼내는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열쇠는 당신에 내부에 있다...
출처 / 선 이야기
불교는 마음잡이 공부입니다.
얼마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조복 받을수있는가 ,,,
이성은 알지만 그 行이 감성에 따르면
결단코 범부에서 벗어날수 없을것입니다.
보디삿트와 합장 ()
원공법계제중생자타일시성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