普賢行願品

◐ 경전의 수승한 공덕을 노래하다 ◑

무루2 2017. 4. 6. 07:58
品 ~ 50


◐ 金泥大方廣佛華嚴經普賢行願品

◐ 경전의 수승한 공덕을 노래하다



십방소유무변찰(十方所有無邊刹)에  장엄중보공여래(莊嚴衆寶供如來)하며

최승안락시천인(最勝安樂施天人)하야경일체찰미진겁(經一切刹微塵劫)이라도

약인어차승원왕(若人於此勝願王)에  일경어이능생신(一經於耳能生信)하야

구승보제심갈앙(求勝菩提心渴仰)하면획승공덕과어피(獲勝功德過於彼)로다


(경문)

가없는 시방세계 가득히 쌓은 칠보로써 부처님께 공양한대도 가장 좋은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미진겁이 다하도록 보시한대도 어떤 이가 거룩한 이 서원들을 한 번 듣고 환희하여 신심을 내어 좋은 보리 얻으려고 우러른다면 그 공덕이 저 복보다 훨씬 지나가리라.


[해설]

불교의 경전에는 그 경전의 공덕에 대하여 설명한 내용이 등장한다. 화엄경 보현행원품도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경전을 읽고 경전의 내용들을 충분히 이해하였으면 그 사람은 이미 공덕을 입은 사람이다. 그러나 경전의 깊은 뜻을 아직은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세속적인 가치기준인 금은보화와 칠보 등 온갖 값진 것으로써 비교하여 밝혔다.


세속에서 아무리 값어치가 있는 금은보화라 하더라도 이 보현행품의 공덕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보현행원이란 사람사람들이 모두가 부처님이며, 부처님인 까닭에 부처님인 사람보다 더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밝힌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 가치를 굳이 설명하자면, 무량무변 불가사의 불가설 불가설 불찰 미진수 아승지라고 하더라도 아직은 그 진정한 가치의 수 억만 분의 일도 표현하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 법문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의 가치는 이와 같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처음 왔을 때 양나라 무제라는 임금이 인도에서 온 큰스님이라고 생각하여 친견하였다. 친견하자마자 자신이 지금까지 절을 수백 개 짓고 탑을 수천 개 쌓았으며 스님들을 수십만 명 교육시켰는데 그 공덕이 얼마나 되는 가를 물었는데 달마대사는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하였다. 달마스님이 보기에는 임금님이 지은 공덕보다 그 공덕을 묻고 있는 그 활발한 살아있는 사람 부처님이 수억 만 배의 공덕이 갖춰져 있음을 보았던 것이리라.


스스로에게 있는 크나 큰 공덕은 살펴보지 않고 곧 사라져 없어질 유형의 절과 탑을 공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양무제가 안타까웠으리라. 보현행원품도 역시 이와 같은 이치를 밝힌 경전이므로 그 공덕이 매우 많다고 한 것이다. 선어록에 아래와 같은 법어가 있다. 대주(大珠)스님이 처음 마조(馬祖)스님을 친견하니 마조스님이 물었다.


“무엇을 하려고 왔느냐?” 

“불법을 구하려고 왔습니다.”


“나에게는 한물건도 없거늘 무슨 불법을 구하려는가?

자기의 보물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집을 버리고

돌아다녀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어떤 것이 저의 보물입니까?”

“지금 바로 나에게 묻는 그것이 바로 너의 보물이니라.

그것은 일체를 모두 갖추었다. 그런데 무슨 바깥으로 구할 것이 있는가?”


마조스님의 이 말씀에 대주스님은 크게 깨달았다. 불교란 궁극적으로 이 사실을 가르쳐주는 일이며 이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이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으며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보현행품은 가르치고 있다.




나무 석가모니불!

성불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