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들아, 나는 오조 홍인화상의 회하에서 한 번 듣자 그 말끝에 크게 깨쳐 진여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보았으니라.
그러므로 이 가르침의 법을 뒷세상에 유행시켜 도를 배우는 이로 하여금 보리를 단박 깨쳐서 각기 스스로 마음을 보아 자기의 성품을 단박 깨쳐게 하는 것이다. 만약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이는 모름지기 큰 지식들을 찾아서 지도를 받아 자성을 받아 자성을 볼 것이니라.
어떤 것을 큰 선지식이라고 하는가? 최상법이 바른 길을 곧게 가리키는 것임을 아는 것이 큰 선지식이며 큰 인연이다. 이는 이른바 교화하고 지도하여 부처를 보게 하는 것이니, 모든 착한 법이 다 선지식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느니라,
모름지기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자성을 볼지니라. 만약 자기의 마음의 삿되고 미혹하여 망념으로 전도되면 밖의 선지식이 가르쳐 준다 하여도 스스로 깨치지 못할 것이니 마땅히 반야의 관조를 일으키라.
잠깐 사이에 망념이 다 없어질 것이니 이것이 곧 자기의 참 선지식이라, 한번 깨침에 곧 부처를 아느니라.
善知識 我於忍和尙處 一聞 言下 大悟(伍) 頓見眞如本性 是故將此(汝)敎法
流行後代 令(今)學道者 頓(175)
悟(伍)菩提 各自觀心 令自本性 頓悟 若<不>能自悟者 須覓大善知識示導(亦道) 見性(姓) 何名大善知<識> 解最上乘法 直示正路 是大善知識 是大因緣 所謂(爲)見性(姓) 何名大善知<識> 解最上乘法 直示正路 是大善知識 是大因緣 所謂(爲)云在人性中 本自具有 不能自性(姓)悟 須得善知識示導(道) 見性 若自悟者 不假外善知識 若取外求善知識 望得解脫(說) 無有是處 識自心內善知識 卽得解<脫> 若自心 邪迷 妄念顚倒 外善知識 卽有敎授 [汝若]不得自悟 當起般若觀照 刹那間 妄念 俱滅 卽是自眞正善 知識 一悟卽知佛也(176)
자성의 마음자리가 지혜로써 관조하여 안팎이 사무쳐 밝으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알고, 만약 본래 마음을 알면 이것이 곧 해탈이며, 이미 해탈을 얻으면 이것이 곧 반야삼매며, 반야삼매를 깨치면 이것이 곧 무념이니라.
어떤 것을 무념이라고 하는가? 무념법이란 모든 법을 보되 그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으면, 모든 곳에 두루하되 그 모든 곳에 집착치 않고 항상 자기의 성품을 깨끗이 하여 여섯 도적들로 하여 오고감에 자유로운 것이다.
이것이 곧 반야삼매이며 자재해탈이니 무념행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온갖 사물을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항상 생각이 끊어지도록 하지 말라. 이는 곧 법에 묶임이니 곧 변견이라고 하느니라.
무념법을 깨친 이는 만법에 다 통달하고, 무념법을 깨친 이는 이는 모든 부처의 경계를 보며, 무념의 돈법을 깨친 이는 부처의 지위에 이르느니라.
自性心地 以智惠觀照 內外明(名)徹 識自本心 若識本心 卽是解脫 旣得解脫 卽是般若三昧 悟般若三(178)
昧卽是無念 何名無念 無念法者 見一切法 不著一切法 遍一切處 不著一切處 常淨自性 使六賊 從六門走出 於六塵中 不離不染 來去自由 卽是般若三昧 自在解脫 名無念行 莫百物不思 常(當)令念絶 卽是法縛(傳) 卽名邊見 悟無念法者 萬法盡通 悟無念法者 見諸佛境界 悟無念頓法者 至佛位地(179)
*돈견본성(頓見本性 본래 성품을 단박에 봄)... 내외명철하면 이것이 곧 식심(識心 마음을 앎).해탈. 무념이고, 무념은 곧 불지라 하였다. 내외명철은 묘각이며, 식심은 견성(見性 성품을 봄)이므로, 견성하면 묘각해탈이요 불지무념이다. 그러므로 견성하면 곧 성불인 것이다.
'곧 불성을 보아서 아뇩다라삼보리를 얻느니라
[卽見佛性하야 得阿 多羅三 三菩提니라 - 涅槃經 二]'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불성을 보느니라
[必得阿 多羅三 三菩提하야 得見佛性이니라 - 涅槃經 二十]'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무상정각 곧 성불이니, 위의 글들은 성불과 견성이 동일한 내용임을 말한다.
'지위가 십지인 보상이라 하여도 오히려 불성을 밝게 보지 못하느니라
[菩薩이 位階十地하여도 尙未明了知見佛性이니라 - 涅槃經 八]'
모든 부처님은 정.혜를 함께 함으로써 불성을 밝게 보느니라
[諸佛世尊은 定慧等故로 明見佛性이니라 - 涅槃經 二十八].'
'보살의 지위가 다하여 미세한 망념을 멀리 떠남으로써 심성을 보나니, 구경각이라고 이름하느니라.
[菩薩地盡하야 以遠離微細念故로 得見心性이니 名究竟覺이니라- 起信論].'
'십지의 성인들이 법문을 설하기를 구름 이는 듯하고 비오듯 하여도, 견성은 비단으로 눈을 가리운 것과 같으니라.
[十地聖人이 說法은 如雲如雨하야도 見性은 如隔羅穀이니라 - 雲門 傳燈錄 十九].'
'견성하면 곧 부처가 되느니라
[見性하면 즉성여래(卽成如來)니라 - 宗鏡錄 四十四].]
*이상과 같이 부처님과 조사들이 한결같이 견성이 곧 성불이라고 하였으니, 육조스님 말씀과 같다. 그리고 교가(敎家)의 권위인 현수(賢首)도 그의<기신론의기(起信論義記)>에서 구경불지(究竟佛地)만이 견성이라고 하였으니, '견성이 곧 성불'임은 선(禪). (敎)를 통한 근본 철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