禮拜者(예배자)는 常如法也(상여법야)니 理體(이체)는 內明(내명)하고 事相(사상)은 外變(외변)이어든 理不可捨(이불가사)어니와 事有行藏(사유행장)하나니 //예배라는 것은 항상 법과 같으니 이체(만유위 본체)는 안으로 밝지만, 작용의 모습은 밖으로 변하므로 이치는 버릴 수 없거니와 현상에는 드러나는 것과 감추는 것이 있느니라.
會如是義(회여시의)하야사 乃名依法(내명의법)이니라 //이와 같은 도리를 알아야 비로소 법에 의지한다고 (이름)할 수 있느니라.
夫禮者(부예자)는 敬也(경야)요 拜者(배자)는 伏也(복야)니 恭敬眞性(공경진성)하고 屈伏無明(굴복무명)이라야 名爲禮拜(명위예배)니라 //무릇 '예'라는 것은 공경한다는 것이고, '배'라는 것은 복종한다는 것이니, 진실한 본성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을 예배라고 이름하느니라.
以恭敬故(이공경고)로 不敢毁傷(불감훼상)하고 以屈伏故(이굴복고)로 無令縱逸(무령종일)하나니 //공경하기 때문에 감히 헐뜯지 못하고 굴복하기 때문에 제멋대로 못하게 하는 것이니라.
若能惡情(약능악정)이 永滅(영멸)하고 善念(선념)이 恒存(항존)하면 雖不現相(수불현상)이나 常爲禮拜(상위예배)니라 //만약 나쁜 마음을 영원히 없애고 착한 생각을 항상 지닐 수 있으면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예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用之則現(용지즉현)하고 捨之則藏(사지즉장)이라 擧外明內(거외명내)는 唯性相(유성상)이 相應也(상응야)일새니라 //수용하면 곧 나타나고 버리면 곧 감추어지는 것이라 밖의 행동(예배)으로 안이 밝아지는 것은 오직 성품과 모양이 상응하기 때문이니라.
若復唯執外相禮拜(약부유집외상예배)하면 內則縱於貪嗔(내즉종어탐진)하야 常行惡念(상행악염)하고 外則空顯身相(외즉공현신상)하야 假作敬禮(가작경예)하나니 何名禮拜(하명예배)리요 //만약 바깥 모습의 예배에만 집착한다면 안으로 곧 탐·진의 마음을 쫓게 되므로 항상 나쁜 생각을 행하고 겉으로만 절하는 모습을 보일 뿐이고 거짓으로 공경하는 것이 되니 어찌 예배라고 이름할 수 있겠느냐.
欺賢광(言+狂)聖(기현광성)이라 必不免於輪廻(필불면어윤회)니라 //현명한 사람을 속이는 것이고 성인을 속이는 것이므로 반드시 윤회를 면치 못할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