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스님의 유서말씀 ◐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제 명대로 살 만치 살다가 가는 사람에겐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므로,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라도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그리고 이 육신으로서는 실제로는 유서 같은 걸 남길 만한 처지가 못 되기 때문에 누구를 부를까? 유서에는 흔히 누구를 부르던데? 아무도 없다.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설사 지금껏 귀의해 섬겨온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서 왔고 내 그림자만을 이끌고 휘적휘적 삶의 지평을 걸어왔고 물론 오늘까지도 나는 멀고 가까운 이웃들과 서로 왕래를 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생명 자체는 어디까지나 그것은 보랏빛 노을 같은 감상이 아니라 고뇌를 뚫고 환희의 세계로 지향한 나는 인간의 선의지善意志 이것밖에는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 된 이 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그러므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은 이웃의 선의지에 대해서 내가 어리석은 탓으로 때로는 큰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허물이란 너무 크면 그 무게에 짓눌려 어쩌면 그것은 그러나 나는 평생을 두고 그 한 가지 일로 해서 그것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동무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그 엿장수는 교문 밖에서도 가끔 볼 수 있으리만큼 대여섯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돈은 서너 가락치밖에 내지 않았다. 이 일이, 그가 만약 넉살 좋고 건장한 엿장수였더라면 그런데 그가 장애자라는 점에서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허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때 저지른 이 다음 세상에서는 다시는 더 이런 후회스런 일이 내가 살아 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날카로운 면도날은 밟고 가기 어렵나니 현자가 이르기를 구원을 얻는 길 또한 이같이 어려우니라." <우파니샤드>의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내가 죽을 때는 가진 것이 없으므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 관념이다.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책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 하고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 술 더 떠 거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평소의 식탁처럼 나는 간단 명료한 것을 따르고자 한다. 어느 여름날 아침에 좋아하게 된 양귀비꽃이나 모란을 심어 달라고 하겠지만,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그것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니까, 아무데서나 다비(茶毘 화장)해도 무방하다. 사리 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그런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수행자가 되어 금생에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무소유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많은 저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널리 알려왔다. 1954년에 승려 효봉의 제자로 출가하였고 1970년대 후반에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을 지어 살았다.
1932년 10월 8일에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목포시에서 지냈다. 목포상업고등학교(현 전남제일고등학교)를 거쳐 전남대학교 상대에 진학했다. 그는 당시에 일어난 한국 전쟁을 겪으며 인간에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교 3학년때인 1954년에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오대산으로 떠나기로 했던 그는 눈길로 인해 차가 막혀 당시 서울 안국동에 있던 효봉 스님을 만나게 된다. 효봉 스님과 대화를 나눈 그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바로 다음 해에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1959년 3월에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으며, 1959년 4월에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 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만, 물 소리 바람 소리, 버리고 떠나기, 인도 기행,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그물에 걸지 않는 바람처럼, 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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