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모든 사람에게 잠이라는 공짜 보약이 배달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정말 잘
자고 있는걸까?
잠은 저축이 가능하다?
밤샘을 대비해서 미리 많이 자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 다음 날 똑같이 졸음이 밀려오고 피로감도 함께 찾아오기 때문이다. 수면은 2가지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다. 잠드는 타이밍을 결정하는 서케디언 리듬과 체내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호메오스타시스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서케디언 리듬은 하루 주기로 반드시 졸리게 되는 신체 리듬을 작용시켜 아무리 많이 자도 수면 저축은 불가능하게 한다. 이렇듯 저축은 안 되지만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 잠이다. 잠이 부족할 때 자연스레 낮잠이나 늦잠을 자는 것도 그 때문이다.
꿈을 꾼 날은 얕은 잠을 잔 것이다?
매일 얕은 잠을 자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사람의 수면은 얕은 수면, 깊은 수면, 꿈 수면의 3가지 단계를 주기적으로 반복한다. 즉, 잘 잤다고 해서 밤새 깊은 수면을 취한 것도 아니고, 꿈을 꿨다고 해서 밤새 꿈만 꾼 것도 아니다. 사실 꿈을 꾸는 시간은 전체 수면 시간의 20% 정도밖에 안 된다. 다만 깊은 잠을 자는 중에는 의식이 거의 없어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얕은 수면과 꿈 수면 단계는 나중에 기억할 수 있어 꿈을 꾸면 얕게 잤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푹신한 곳에서만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침대 매트리스나 이불이 푹신해야 잘 잘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푹신해야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푹신한 침대에 누우면 허리가 아프고 몸이 불편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경우 일부러 딱딱한 맨바닥에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 가장 좋은 수면법은 적당한 쿠션감이 느껴지는 곳에서 자신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정도를 찾아가는 것이다. 지나치게 푹신한 매트리스는 엉덩이나 어깨 등이 파묻혀 수면 자세가 나빠지고 근육이 긴장해 피로감이 생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은 뜬소문이다?
깊은 수면에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은 청소년기에는 성장과 발육을 주관하지만 성년기에는 세포의 생성과 분열을 촉진해 손상된 조직을 회복시킨다. 피부도 이 성장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데, 밤 9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세포 분열이 왕성하게 일어나 낮 시간 동안 손상된 조직을 재생하고 충전한다. 또한 수면은 피부로 가는 혈관을 수축시켜 혈류량을 적게 만들고 땀과 피지의 분비를 감소시켜 피부가 쉴 수 있도록 돕는다. 게다가 피부 각질은 28일을 주기로 교체되는데 수면이 부족하면 각질이 모공을 막아 염증성 피부 질환을 일으키기 쉬우니 예뻐질려면 푹 자는 것이 좋다.
일찍 자야 일찍 일어날 수 있다?
꼭 일찍 잔다고 일찍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알람 없이도 일어나야 할 시각에 자연스럽게 눈을 뜬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일정 기간 동안 계속 같은 시각에 일어나면서 신체가 기상 시각을 스스로 세팅해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칙적인 기상 습관이 있는 사람은 일찍 잠이 자든 늦게 자든 항상 비슷한 시각에 일어나게 된다. 만약 다음 날 일찍 일어나야 한다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수면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었다 하더라도 기상 시각 차이로 인한 컨디션 난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알아둬야 한다.
1~2잔의 술은 숙면을 도와준다?
술은 몸의 긴장을 풀어주고 근육을 이완시켜 잠자리에 누웠을 때 신체가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양질의 숙면에 취하는데 방해가 된다. 우선 잦은 소변 때문에 자꾸 잠에서 깨게 되고,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얼굴이 빨개지는 등의 신체 반응이 생겨 깊은 잠을 이룰 수 없다. 술이 깰 때가 되면 신체에는 각성 주기가 찾아오는데, 이 때문에 술의 힘을 빌려 잠들었다가도 금세 깨게 되고 다시 잠들기는 더 힘들어진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스트레스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만 잠들기 위해 마시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초저녁에도 잠이 오면 일단 자는 것이 좋다?
수면에는 각성 리듬이 있다. 즉, 언제 자고 언제 각성해야 하는지에 대해 법칙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깨면 각성 리듬이 서서히 올라오고, 오후 1~3시 사이에 다시 떨어진다. 흔히 점심 식사 후에 졸린 것도 이 때가 각성 리듬이 떨어지는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이후 각성 리듬은 다시 상승했다가 잠들기 전에 다시 떨어지면서 수면을 준비한다. 하지만 초저녁부터 잠을 자면 이 리듬이 흔들려 밤이 되었는데도 다시 각성하는 혼란이 생긴다. 때문에 초저녁 수면은 최대한 자제하고, 참기 힘들다면 20분 이내로 짧게 자야 한다.
잠이 부족하면 살이 빠진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도와주는 렙틴이 분비되어 각성하고 있는 동안에도 식욕을 억제할 수 있다. 반면 수면이 부족하면 식욕을 증가시키는 그렐린이 분비되어 밤에 잠은 자지 않고 뭔가 자꾸 먹는 현상이 반복된다. 게다가 수면이 부족하면 컨디션 저하와 정신적 스트레스로 코르티솔 호르몬이 분비되어 음식을 섭취하려는 충동이 매우 강해진다. 잠이 부족해 수척해지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체중이 줄었다 하더라도 지방이 아닌 근육, 수분 등이 줄어든 것이라 이런 다이어트 법은 결국 몸을 망치게 된다.
잘 때는 머리 쪽이 따뜻할수록 좋다?
잠들기 시작할 때는 체온이 약간 떨어진다. 별로 춥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자다가 한기를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하지만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잠이 들기 직전까지도 머리 쪽의 온도가 내려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량의 혈액이 머리 쪽에 몰려 있어서다. 따라서 머리 쪽을 조금 서늘하게 해야 혈액을 분산시키고 개운한 잠을 잘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계절과 상관없이 베개의 온도를 조금 낮게 만드는 것이 좋다. 메밀껍질같이 찬 성질의 한약재로 속을 채운 베개가 각광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잠들기 직전에 밝은 곳에 가도 된다?
많은 사람이 잠자기 전에 편의점에 다녀오거나 불이 켜진 거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렇게 잠들기 직전에 밝은 불빛을 보면 수면을 안정시키는 물질인 멜라토닌의 양이 급격히 줄어 숙면을 취하기가 어렵다. 멜라토닌은 낮에 햇빛을 볼 때 생성되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분비된다. 특히 잠들기 직전에 그 양이 최고조에 이르는데, 불빛을 보면 자극을 받아 혼란이 일어나고 주변 상황을 밤이 아닌 낮으로 착각할 수 있다. 따라서 잠들기 1~2시간 전부터 주변 조명을 최대한 어둡게 하는 것이 숙면에 효과적이다.
낮잠은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좋다?
밤에 자는 것처럼 낮잠도 일종의 습관이다. 몇 번 낮잠을 자다 보면 낮잠을 못 자는 날은 심한 피로감과 졸음을 느끼게 되는데, 기본적으로 수면과 각성 리듬에서 보면 낮잠은 꽤 좋은 수면 습관이다. 일반적으로 낮잠을 자면 게을러 보인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참게 되지만, 오히려 점심 식사 후 20분 정도 낮잠을 자면 오후의 컨디션과 작업 능률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만약 매일 낮잠을 자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심한 피로를 느낄 때, 또는 지난밤 잠이 부족했다고 느껴질 때만이라도 잠시 낮잠을 자는 것이 좋다.
배부른 상태에서 잠들어도 괜찮다?
평소보다 과식해서 포만감을 느끼면 쉽게 나른해지고, 그 느낌을 좇아 그대로 잠자리에 드는 사람들이 많다. 배부른 상태에서 잠이 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좋지 않는 수면법이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우리 몸은 음식물을 소화시키기 위해 계속 활동하기 때문에 깊은 수면을 취할 수 없을뿐더러 소화기관에 부담을 주어 자칫 만성 위염이나 역류성 식도염 같은 소화 장애를 유발할 수도 있다. 따라서 양질의 숙면을 취하고 싶다면 가급적 가볍게 먹고 어느 정도 소화를 시킨 뒤 잠자리에 드는 것이 적합하다.
한 번에 몰아서 자면 피로가 풀린다?
평소 잠이 많이 부족한 상태라면 주말에 몰아서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몰아서 잔다고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 번에 풀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수면 리듬이 비정상적으로 흔들리면서 평소보다 더 심한 피로가 밀려올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수면법은 매일 비슷한 시각에 잠들고 비슷한 시각에 일어나는 일정한 수면 패턴을 유지하는 것이다. 꾸준히 이런 수면 습관을 실천하면 잠들고 일어나는 생체 리듬을 일정하게 만들 수 있어 만성 피로감도 줄어들고 보다 건강한 신체 리듬을 형성할 수 있다.
잠이 오지 않아도 일단 누워 있어야 한다?
잠자리에 누워 뒤척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수면에 대해 긴장하게 된다. 자야 하는데 잠들지 못한다는 심적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이다. 이럴 때는 차라리 편안한 마음으로 TV를 보거나 책을 읽는 등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 좋다. 그렇게 얼마 정도 있다가 졸음이 밀려오면 자연스럽게 잠자리에 눕는 것이다. 하지만 만성 수면 부족을 겪고 있다면 이 방법이 오히려 피로를 유발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자야 한다는 생각 대신 눈을 감고 피로만 풀자는 마음으로 최대한 편하게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매일 8시간 이상 자는 것이 좋다?
사람마다 만족을 느끼는 수면 시간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4~5시간만 자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7~8시간을 자야만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수면도 일종의 생활습관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수면 시간을 찾아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평균 7시간 정도가 가장 이상적인 수면 시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 상식이지만 수면 시간은 너무 적어도 건강에 해가 되고 지나치게 많이 자도 신체에 불균형을 불러일으킨다.
정원 원장은…
일명 '잠 박사'로 알려진 한의학 박사 허정원 원장은 불면증을 비롯한 각종 수면 장애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편안하게 잘 잘 수 있는 방법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또한 한방 치료를 통해 전반적인 건강과 심리 상태를 개선시켜 불면증 환자들이 자연스러운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돕는다.
○ 출처 : 진행_이미혜 기자 | 사진_박병진 | 도움말_허정원(자미원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