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는 절마다 다니면서 관음경이나 지장경
혹은 다른 기도를 하는 신도님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기도는 한정된 시간 안에만 하는 것이 아니고
세세생생 해야 하며 또 내 자신을 위한 기도에서
나아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로
바꿔가야 할 것입니다.
한정된 시간에서 영원한 시간으로, 나에서부터
이웃 사회로 펼쳐지는 기도가 될 때 이 사회는
내 한사람의 기도를 통해서 바람직한 사회로
전환되고 끝으로 불국토 성취가 이루어집니다.
얼마 전 어느 지역의 신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스님들은 오히려 무상無常과 맞서서 세속에서
살아가는 참으로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는 소극적이고 이 세상에
존재가치가 없는 가르침이다”라고 신문에 실렸는데
그 지방 스님들과 불교인들이 들고 일어나
한참 항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또 신문에 다른 종교는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하여 사람중심으로 살아가게 했고
또 사람 이외의 것은 사람을 위해서 얼마든지
살생을 해도 관계없다.
이러한 가르침인데 반해 불교는 실상 모두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사람중심의 종교가
아니다. 그래서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들의
종교가 우세하다고 연달아 불교를 비방하는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오해뿐만
아니라 불교를 믿는 우리들에게도 오해가 다소
있을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지요.
참으로 바람직한 불교의 뜻으로 회복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보살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보살은 절에 다니는 여자 신도를 보고 부르는
단순한 내용이 아니라 승속을 막론하고 비구,
비구니, 우바이, 우바새, 사부대중 모두를 일컫는 일입니다.
그래서 보살의 뜻으로 불교를 이해해 볼 때
무상이 두려워서 도피해가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사실은 지극히 적극적인 삶이며,
살생문제는 보다 더 넓은 자비 사상을 나타내는
것이지 사람중심이 아니라고 하는 오해는 부당한 것입니다.
지장기도를 통해서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업장을
소멸해 드리고 나아가 살아있는 우리 중생들의
업장 또한 소멸하여 보다 더 바람직하고 밝은
삶을 가꾸어 가자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보살의 적극적인 삶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가 어떤 업장을 짓고 있는가?
또 그 업장은 어떻게 소멸되는가?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보살의 가장 바람직한
삶은 과연 어떤 것인가를 연관지어 이번 시간에
살펴보고자 하겠습니다.
지장경에 보면 지장보살님이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펴고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평소에 살생하는 사람을 만나면 명命이 짧아진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단명한 사람은 우리 업장의 입장으로 살펴볼 때
틀림없이 살생을 많이 한 사람인 겁니다.
대승경, 소승경 할 것 없이 인과법을 보더라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물론 직접적인 원인 즉 교통사고나 불치의 병
우연한 계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하나의 계기에 불과한 것이고 근원적으로
깊은 원인을 궁구해 들어간다면 결국은 내 업장과
내 인연으로 밖에 해결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계기로 이야기 한다면 똑같은 계기로
사고가 났는데 죽는 사람이 있는 반면,
산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눈으로 지장보살의
지혜의 눈으로 볼 때 우리의 단명한 과보는
틀림없이 과거 무량겁 전에 살생을 한 인연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러한 이치를 통해 우리의 삶을 잘 가꾸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 도둑질하는 사람을 만나면 빈곤하고 고충 받는 과보를
말해 줍니다.
가난해서 고생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과거에
본의거나 본의가 아니거나 간에 도둑질을 지은
관계로 그런 고충을 받는다고 지장보살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나운 입을 놀리는 사람을 만나면 권속과 다툼의 과보를
말해 줍니다.
신문의 사회면을 보면 권속하고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물론 직접적인 원인은 재산이나
온갖 불화가 되겠지만 이것들은 하나의 계기가 될 뿐입니다.
그리고 성내는 사람을 만나면 얼굴이 더럽고
찌그러지는 과보를 말해 줍니다.
인색하고 간탐하는 사람을 만나면
구하는 바가 어긋나는 과보를 말해 줍니다.
과거생에 너무 인색하고 아끼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결국은 자기가 구할 때 안 되는 것입니다.
100원을 써야 할 입장인데 아까워 50원을 썼다고
할 때 50원을 아꼈으니까 얼른 보면 마음이
편안할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늘 후회스럽습니다.
남에게 제대로 베풀지 못하면 자기에게도
남이 잘 베풀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불교는 사람이 살아가는 일 보다 더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일이므로 불교가 곧 인생이며 인생은
역시 불교입니다.
조사스님들은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잔다고
했는데 이것은 불교가 곧 삶이며 우리의 삶이 불교라는 뜻입니다.
꿈을 깬 사람이나 꿈을 깨지 않은 사람이나
인간으로 삶을 살아가는 일 외에 달리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을 훌륭히 가꾸어 가는 일
이것이 불교의 이상일진대,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내 자신의 삶을 추스르고 가다듬는
길이 아주 중요합니다.
보살의 임무가 바로 이런 적극적인 삶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밝고 좋은 면, 가능성 있는 면을 보고서
이것을 꽃피우고 열매 맺게 하는 일입니다.
◎출처:大智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