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華經(법화경)

◑ 방편 ◑

무루2 2017. 4. 4. 00:07


妙 法 蓮 華 經 ~ 17




◑  묘 법 연 화 경

방편 ◑




강의;부처님이 깨달으신 모든 존재의 진실한 모습은 매우깊고 한량이 없습니다. 학습주의 수행자인 연각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모든 법의 진실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중생들을 깨우치려면 거짓말이라도 해서 수준을 높인 뒤에 진실을 말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삼승(三乘)의 가르침을 방편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삶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가치, 즉 진정한 자유와 평화와 행복, 그리고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가능성들은 참으로 미묘 불가사의하고 그저 경이로울 뿐입니다. 인간이 여러가지 방편으로 모든 노력을 다기울여서 얻고자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사람의 삶속에 이미 다 갖추어져 있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부처님은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오직 하나뿐인 진실, 일불승(一佛乘)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것을 밖을 향해서 찾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 이외에 다른 것에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여기 지극히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이들이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고 부단히 찾아다닙니다.

 

부단히 찾아 다니는 그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수없이 방편으로 온갖 거짓말을 아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방편이라고 합니다. 어떤이가 봄을 찾아서 다리가 아프도록 산과 들을 찾아 다니다가 끝내 못찾고 집에 돌아오니 울타리가에서 있는 매화 가지에 봄이 완연 하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매화나무에서 알리고 있는 봄소식을 모르는 사람은 하는 수없이 산으로 들로 찾아다니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주(大珠)스님이 마조(馬祖)스님에게 도를 묻기 위해 찾아가서 주고 받는 대화가 매우 절묘합니다.

 

"어디서 왔는가?" "월주 대원사에서 왔습니다."

"무슨 일을 위해서 여기 왔는가?" "부처님 법을 구하려고 여기에 왔습니다." "자신의 보물은 돌아보지도 않고 집을 버리고 부질없이 왜 그렇게 쫓아다니는가[자가보장불고기가산주작심(自家寶藏不顧棄家散走作甚)]. 여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무슨 부처님의 법을 구한다 말인가?"

 

"그럼 무엇이 저 자신의 보물입니까?" "지금 나에게 묻는 그 사람이 그대의 보물이다. 거기에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은 없다. 그대가 마음대로 쓰고 있는데 왜 밖을 향해서 찾는가?"

 

대주스님은 이 대목에서 크게 깨닫고 뛸 듯이 기뻐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리[佛法]를 찾아서 아무리 중국을 가고 인도를 가도 거기에는 역시 진리는 없습니다. 찾고자 하는 그 자신에게 있습니다.

 

경문: 그때 세존께서 삼매에서 조용히 일어나서 사리불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매우 깊고 한량이 없는니라. 이해하기도 어렵고 들어가기도 어려워서 성문이나 벽지불들은 이해하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부처님은 또 다른 수많은 부처님들을 가까이하여 하량없는 가르침을 배우고 용맹 정진하였기 때문이니라. 이름은 널리 퍼지고 미증유의 깊은 법을 성취하여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법을 설하시므로 그 뜻을 이해하기 매우 어려우니라."

 

강의: 서품에서는 미륵 보살이 질문한 것을 문수보살이 과거 일월등명(日月燈明) 부처님의 옛 상서를 기억하여 오늘도 반드시 아름다운 진리의 가르침, 법화경의 설법이 있으리라고 알려주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일월등명이라는 부처님의 명호는 지혜의 빛에 의한 밝은 마음과 밝은 사고를 뜻합니다. 한낮의 태양과 같은 밝음, 밤 하늘의 달과 같은 밝음, 어두운 밤길의 등불과 같이 길을 비추는 밝음으로 깨달음의 지혜를 상징합니다.

 

부처님이란 오로지 깨달음의 빛일 뿐입니다. 그래서 경문에서는 앞의 부처님이나 뒤의 부처님이나 모두 같은 하나의 이름이다. 즉 깨달음의 지혜에 의한 밝음 그 자체일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지혜의 빛으로 무엇을 보는가. 사람사람이 모두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밝게 비춰보는 것입니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 곧 부처님으로서의 가치를 밝게 아는 것입니다. 비로서 부처님은 삼매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는 부처님들이 깨달으신 지혜는 끝없는 정진과 수행을 통하여 얻은

것이므로 매우 깊어서 성문이나 벽지불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십니다. 무려 세번이나 부처님의 깨달음을 높이 찬탄만 하시고 설하시기를 거절하십니다. 역시 세 번이나 어렵다고만 말씀하십니다. 사리불은 역시 설법하여 주시기를 세 번이나 간청합니다. 이 대목을 법화경은 그 유명한 삼지삼청(三止三請)이라고 합니다. 세번 거절하고 세번 청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5천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미증유의 사태가 벌어집니다. 경전에서는 그들을 거만한 사람, 교만과 아만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아직 얻지 못했으면서 얻었다 생각하고 깨닫지 못했으면서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부처님은 굳이 말리지도 않으시면서 곧 "이제 이 대중 가운데는 가지나 잎은 없고 오직 열매만 남았구나. 잘난체 하는마음이 가득한 이는 물러가도 좋다. 이제는 그대들을 위하여 참으로 소중한 법을 설해 주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부처님이다. 라는 이 전무후무한 위대한 말씀은 이렇게 또 전무후무한 우여곡절 끝에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진리의 가르침은 들을 만한 사람이 있는데 설하지 않으면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할 사람에게 말을 하면 진리의 가르침을 잃어 버립니다. 부처님은 지혜로운 분인지라 걸러 낼 사람들은 모두 걸러 낸 뒤에 비장하여 두었던 최상이며 최후의 진리의 말씀을 설하시게 됩니다. 이해하지 못할 말을 듣고 비난 하게 되면 죄를 짓는 결과를 부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는 윤리나 도덕에 관한 말씀도 많습니다.

 

인과(因果)의 이치나 사성제(四聖諦), 십이인연(十二因緣), 팔정도(八正道), 육바라밀(六波羅密) 같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가르침도 많습니다.그러나 여기 법화경의 가르침은 그와 달라서 사성제나 십이인연, 팔정도를 공부하는 성문이나 연각들은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잘라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눈에 보이는 외형에만 길들여져서 보이지 않은 자기 자신에게는 전혀 이해가 없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이 무진장의 보고(寶庫)며 모든 바라는 바가 다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 하니 그 어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대 자신이 부처님이다. 부처님이 수많은 겁 동안 수행하여 이뤄놓은 지혜와 자비와 열반과 해탈등 특별하고 남다른 온갖 능력들이 모두들 그대 자신에게 고스란히 있노라. 불생 불멸의 영원한 생명까지도." 

 




나무 석가모니불!

성불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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