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지상이라고 하는 한 스님이 조계산에 와서 큰스님께 예배하고 사승법(四乘法)의 뜻을 물었다. 지상이 큰스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은 삼승을 말씀하시고 또 최상승을 말씀하시었습니다. 제자는 알지 못하겠사오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혜능대사가 말씀하셨다. "너는 자신의 마음으로 보고 바깥 법의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윈래 사승법이란 없느니라.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네 가지로 나누어 법에 사승이 있을 뿐이다. 보고 듣고 읽고 욈은 소승이요, 법을 깨쳐뜻을 앎은 중승이며, 법을 의지하여 수행함은 대승이요, 일만 가지법을 다 통달하고 일만가지 행을 갖추어 일체를 떠남이 없으되 오직 법의 모양을 떠나고 짓되, 얻는 바가 없는 것이 최상승이니라.
승(乘)은 행한다는 뜻이요 입으로 다투는 것에 있지 않다. 너는 모름지기 스스로 닦고 나에게 묻지 말라."
時有一僧名智常 來曹溪山 禮拜和尙 問(聞)四乘法義 智常 問(聞)和尙曰 佛說三乘 又言最上乘 弟子不解 望爲敎(敬)示 惠能大師曰 汝自身心見 莫著外法相 元無四乘法 人心自有(不量)四等 法有四乘 見聞讀誦 是小乘 悟<法>解義是中乘 依(衣)法修行 是大乘 萬法 盡通 萬行(幸)俱備 一切無離 但離法相 作無所得(德) 是最上乘 乘是[最上]行義 不在口諍 汝須自修 莫問吾(悟)也(237)
또 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름을 신회라고 하였으며 남양사람이다. 조계산에 와서 예배하고 물었다. "큰스님은 좌선 하시면서 보십니까. 보지 않으십니까?"
대사께서 일어나서 신회를 세 차례 때리시고 다시 신회에게 물었다. "내가 너를 때렸다. 아프냐, 아프지 않으냐?"
신회가 대답하였다.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신회가 또 여쭈었다. "큰스님은 어째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십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항상 나의 허물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다고 말한다. 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허물과 죄를 보지 않는 것이다. 그 까닭에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네가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하다 했는데 어떤 것이냐?"
신회가 대답하였다. "만약 아프지 않다고 하면 곧 무정인 나무와 둘과 같고 아프다 하면 곧 범부와 같아서 이내 원한을 일으킬 것입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신회야, 앞에서 본다고 한 것과 보지 않는다고 한 것은 양변(兩邊)이요, 아프고 아프지 않음은 생멸이니라. 너는 자성을 보지도 못하면서 감히 와서 사람을 희롱하려 드는가?" 신회가 예배하고 다시 더 말하지 않으니,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네 마음이 미혹하여 보지 못하면 선지식에게 물어서 길을 찾아라.
마음을 깨쳐서 스스로 보게 되면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라. 네가 스스로 미혹하여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면서 도리어 와서 혜능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내가 보는 것은 내 스스로 아는 것이라 너의 미혹함을 대신할 수 없느니라. 만약 네가 스스로 본다면 나의 미혹함을 대신하겠느냐? 만약 네가 스스로 본다면 나의 미혹함을 대신하겠느냐?
문인이 되어 조계산중을 떠나지 않고 항상 좌우에서 모시었다.
又有一僧名神會 南陽人也 至曹溪山 禮拜問言 和尙坐(座)禪 見 亦不見 大師起打神會三下 却問神會 吾打汝 痛 不痛 神會答言 亦痛亦不痛 六祖言曰
吾亦見亦不見 神會又問 大師 何以亦見亦不見 大師言 吾亦見 常見自過患 故云亦見 亦不見者 不見天地人過罪 所以亦見亦不見(也) 汝 亦痛亦不痛 如何 神會答曰 若不痛 卽同無情木石 若痛 卽同凡(夫) 卽起於恨 大師言 神會 向前 神會答曰 若不痛 卽同無情木石 若痛 卽同凡(夫) 卽起於恨 大師言 神會 向前 更不言 大師言 汝心迷不見 問善知識覓路 以心悟自見 依法修行(239)
汝自迷(名) 不見自心 却來問惠能見否 吾見(不)自知 代汝迷不得 汝若自見 代得吾迷 何不自修 問吾見否 神會作禮 便爲門人 不離曹溪山中 常在左右(240)
*최상승(最上乘)...삼승(三乘)을 초월한 최존최상제일(最尊最上第一)의 선문(禪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