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장야 업파랑(無明長夜業波浪)에 길 못 찾아 다녔도다
영축산 제불회상(靈축山諸佛會上) 처처(處處)에 모였거든
소림굴 조사가풍(小林窟祖師家風) 어찌 멀리 찾을소냐.
청산(靑山)은 묵묵(默默)하고 녹수(綠水)는 잔잔(潺潺)한데
청풍(淸風)이 슬슬(瑟瑟)하니 어떠한 소식인가.
일리재평(一理齋平) 나툰중에 활계(活計)조차 구족(具足)하다.
청봉만학(千峯萬壑) 푸른 송엽(松葉) 일발중(一鉢中)에 담아두고
백공천창(百孔千瘡) 깁은 누비 두 어깨에 걸었으니
의식(衣食)에 무심(無心) 커든 세욕(世慾)이 있을 소냐.
욕정(欲情)이 담박(談泊)하니 인아사상(人我四相) 쓸 데 없고
사상산(四相山)이 없는 곳에 법성산(法性山)이 높고 높아
일물(一物)도 없는 중에 업계일상(法界一相) 나투었다.
교교(皎皎)한 야월(夜月) 하에 원각산정(圓覺山頂) 선 듯 올라
무공적(無孔笛)를을 빗겨 불고 몰현금(沒絃琴)을 높이 타니
무위자성진실락(無爲自性眞實樂)이 이중에 갖췄더라.
석호(石虎)는 무영(無詠)하고 송풍(松風)은 화답(和答)할제
무착영(無着嶺) 올라서서 불지촌(佛地村)을 굽어보니
각수(覺樹)에 담화(曇花)는 난만개(爛慢開)더라.
나무 영산회상 불보살(南無靈山會上佛菩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