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귀, 입막은 원숭이 ◐
◑ 눈, 귀, 입막은 원숭이 ◐ ◑ 무상스님 ◐ 옛날 숲 속에서 깊은 구덩이에 빠진 채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사냥꾼이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원숭이가 사냥꾼을 발견하고 넝쿨을 타고 내려가 간신히 구해냈습니다. 하지만 며칠 동안 구덩이에 빠진 사냥꾼은 아무것도 먹지 못해 죽을 지경이였습니다. 배가 고픈 사냥꾼은 자기를 구해주고 돌아가는 원숭이 뒤통수를 돌로 내리쳐 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사냥꾼은 자기 목숨 살려준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죽어가는 원숭이는 악한 마음을 내지 않고 도리어 사냥꾼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 힘으로 제도할 수 없는 사람은 미래세에 부처가 되어서라도 반드시 제도하리라"고 서원했습니다. 부처님 전생 이야기를 모아 엮은 경전 <본생경>에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은 사냥꾼조차 기필코 제도하겠다고 발원한 원숭이가 바로 부처님의 전생 가운데 하나입니다. 적이란 나와 다름없고, 자비로 제도해야 할 중생임을 여겨 다음 생에 부처가 되어 꼭 제도하겠다는 보살의 원이 이루어져 부처님이 되신 것입니다. 세상살이를 하다 보면 참으로 억욱한 일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몸과 마음으로 큰 상처를 받습니다. 명나라 때 묘협스님은 '장애를 이기는 열가지 수행법<보왕삼매론>'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억울함을 당하여 거듭 거듭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자꾸만 밝히고자 하면 상대와 나를 잊지 못하고, 상대와 나를 두게 되면 반드시 원한이 무성하게 자라느니라. 억울함을 받아들여 능히 참고, 용서하라. 참고 용서하면 겸허하게 바뀌나니, 억울한 일이 어찌 나를 상하게 할 수 있으리.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받아들이는 것을 수행의 문으로 삼으라' 하셨느니라. 내가 하지 않았는데 오해를 받거나, 잘못된 비난을 받거나 하면 참으로 속상할 것입니다. 더구나 사기를 당하거나 손해보는 일을 만나면 솟아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할 것입니다. 어떻게든 억울함을 밝혀 해명하고자 할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억울함이 못숨을 살려준 사냥꾼에게 먹이가 되어 죽은 원숭이만큼 억울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원숭이는 억울해 하지 않고 다음 생에 꼭 사냥꾼을 제도하겠다고 했습니다. 억울함을 밝히려 하면 할수록 더 억울한 일에 빠져들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현명한 방법중의 하나입니다. 있는 그대로 놓고서 바라보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냥 바라보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가 보이게 됩니다. 본래 문제는 원인을 알면 풀 수 있는 것입니다. 어지간한 일은 그냥 있는 그대로 보는 것만으로도 풀리게 될 것입니다. 흔히 사찰이나 불화에서 입 막고, 귀 막고, 눈 막은 원숭이를 만나게 됩니다. 나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고 늘 경계하며 오직 수행에 전념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눈이 있으되 보지 않고, 귀가 있으되 듣지 않고, 입이 있으되 말하지 않는 수행자가 되어야겠습니다. |